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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알아두면 좋은 정보

하나회 실존인물 주요인물

by 37초전 2024. 2. 28.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이라는 대사가 영화가 끝나고서도 잊히지 않는 그 영화 '서울의 봄'을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너무 분하고 화가나서 잠들기 전까지도 계속생각이 날 정도였는데요,

그러다 하나회는 정확히 어떤 사람들이 있으며, 실존인물들은 어떻게 생겼는지도 궁금해 찾아보았습니다.

박정흐 대통령

하늘도 하나 !

태양도 하나!

각하도 하나!

우리도 하나!

 

 육군 사관학교  11기 1951년~ 1955년 동기들과 후배들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한민국 군대에서는 비밀 사조직 하나회가 근본부터 흔들어 놓았습니다. 이 사조직은 가입의식을 비밀리에 진행하며, 

만약 서약을 어길 경우 인격말살까지 감수한다는 배신방지 조항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행동으로 인해 조직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라고 합니다.

하나회
하나회사진 명단

사진 속 하나회 회원들을 이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회 회원은 총 128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중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두 얼굴도 있습니다.

지금부터 하나회가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https://youtu.be/hhq15 yBm768

1951년 한국 전쟁 중, 경상남도 창원군 진해읍에 위치한 육군사관학교에서 개교한 11기

1951년 한국 전쟁 중, 경상남도 창원군 진해읍에 위치한 육군 사관학교에서 개교한 11기에는 전두환과 노태우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수업에는 경상남도와 경상북도 출신 학생들이 많았으며, 다른 지역에서는 전라북도 출신을 제외하고는 인원이 적었습니다. 학생들은 현역과 군속, 공무원, 기타 직업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약 1달간의 훈련을 거쳐 1952년 1월 20일에 정식으로 입학했습니다.

 

11기 학생들의 활동

11기 학생들은 지역별로 모여서 활동했으며, 추운 날씨로 인해 모포를 얻기 위한 싸움에서도 동일한 지역 출신 학생들끼리 서로 도와주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경상북도 출신인 전두환, 노태우, 김복동, 박병하, 박갑용, 남중수 등이 모여 다녔으며, 이후 경남 출신인 손영길, 최성택 등도 합류했습니다.

 

'오인회' 및 '오성회(五星會)'의 형성

이 중에서 전두환, 노태우(전두환과 대구공립공업중학교 동기), 김복동(노태우의 경북고 1년 후배), 최성택, 박병하는 처음부터 의기투합한 '오인회'를 형성했습니다. 이후, 백운택이 합류하여'식스멤버'가 되었고, 박병하를 제외한 5명으로 '오성회'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당시 사관생들도 군인의 꿈은 별이라고 생각하여'추성(雛星, 아기별)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으며,

매년 1~2회'추성'이라는 잡지를 발간했습니다. 이로 인해 졸업 후의 총동창회 명칭도'북극성'으로 알려졌습니다.

 

'오성(五星) 그룹'의 이름과 호칭

회고록에 따르면 어느 날 이들 중 한 명이 모임의 이름을 짓자고 제안했고, 그 결과 오성그룹이라는 이름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특징에 맞춰 호칭을 만들었습니다.

● 용성 전두환: 싸움을 매우 잘해서 용맹하다 하여 용성. 실제로 전두환은 대구에서 싸움으로 알아주던 사람이었다.

● 관성 노태우: 주어진 임무 수행을 칼같이 처리하여 관성

● 여성 김복동: 공부를 매우 잘해서 여성. 실제로 하나회 회원 중 임관성적이 가장 좋은 13등이었다.

● 혜성 최성택: 지혜롭고 슬기롭다 하여 혜성

● 웅성 백운택: 남자다운 기질이 강하고 호방하여 웅성.

    오성회는'김태환회'라고도 불렸습니다. 김복동. 노태우. 전두환  이 3명의 영향력이 강하기도 했지만 셋이 절친이며, 특히 김복동과 전두환은 오성회 시절부터 주도권 다툼을 벌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싸움에서 전두환이 승리하면서 주도권을 쥐게 된다.

하나회가 생기기까지는 아래와 같다

오인회(1951년)→오성회(1952년) →칠성회(1962년) →텐멤버(1963년) →일심회(1963년) →하나회(1963년)

이와 같이 처음부터 하나회가 생겨난 것이 아닌 확대 발전하게 된 것이 하나회이다.